앞 일을 모르고 사는 인생

서론 

      눅12:20에는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부자가 스스로 생각 하기를 재산 관리를 잘한 것도 나......, 농사 관리를 잘한 것도 나......, 인력 관리를 잘한 것도 나......,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많은 재물을 거두었다면서, 곳간을 늘려 짓고, 거둔 것들을 모두 그 곳에 저장한 다음, 기쁘고 즐겁게 연락을 취하면서, 천년 만년 살겠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곧 사람의 생사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밝혀주시는 말씀이다. 

 

      인생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또 세상의 학문을 통달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지,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은 언재나 하나님 뜻에 합하게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예"하고 두려움 없이 떠나 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며 사는 인생이 바로 슬기롭게 사는 인생임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1. 필자가 10대 소년 시절에 받은 충격

      6 25 전쟁이 일어난 직후, 해군에 입대한 필자는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 위해, 군인이 받아야 할 기본 교육과, 함정 요원이 지녀야 할 기술 교육을 모두 받은 다음, 해군 묵호경비부에 배속되어, 작전 통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전시인지라 교신 상대국도 많았고, 통신량도 많았던 관계로, 당직 시간이 되면 정신 없이 움직여야만 했었다.

 

      필자는 1951년 12월 27일 오전, 통신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통신 회선에서 신호가 감지 되기를, 원산 앞 바다 여도(麗島)에 주둔하고 있는 해군첩보부대 무선국에서, 부산에 있는 해군본부 무선국을 호출하고 있었다. 호출을 계속 하여도 응답이 없자, "조난통신"(SOS) 다음으로 급한 "긴급통신"(OSO) 이 있다는 신호"를 전치 하고서 계속 호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해군본부 무선국을 호출하여, 여도 무선국에서 귀국을 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더니, 해군본부는 "신호가 감지되지 않으니 전보를 중계해 달라"고 한다. 필자는 즉시 여도를 호출하여 "전보를 중계 하겠으니 보내라"고 했다. 응당 암호 전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평문 한글 전보의 신호가 필자의 고막을 울리는 것이었다. 전문을 받아 쓰는 필자의 손은 점점 떨리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 나온다. 장문의 전보를 모두 수신한 다음, 해군본부로 중계하면서, 울고 또 울면서, 필자는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전문 내용과 실 현황을 종합하여 아래 3항에서 상술하겠다).

 

2. 원산항만 일대의 지형과 당시 전황

    가. 북한의 기뢰 방류가 유달리 많았던 해역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지상전에서는 한국군이 밀리고 밀려 경남 일부만을 남겨둔 전 국토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다. 그와 같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유엔의 도움으로, 1950년 9월 15일 맥아도 장군이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함으로써,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인천을 통하여 상륙한 국군과 UN군은 맹렬한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0년 10월 1일, 북위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계속하였다. 그러자 북한은 틀림 없이 자신들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인데, 밀리게 되니까 크게 당황하게 되면서, 행여나 유엔군과 한국군의 또 다른 병력이 원산으로 상륙 해 올까봐, 소련으로부터 기뢰를 조립하고 부설하는 기술자 30여 명을 급하게 불러들여, 1950년 10월 4일까지 매일 밤 32척의 조그마한 배를 동원하여 3,000 여 개의 기뢰를 원산항만 일대에 부설하였고, 또 다른 대비책으론 원산항만 일대 곳곳에  해안 포대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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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을 침몰 시키는 기뢰

 

    나. 원산 항만 지역의 환경과 전략적인 가치성

      원산 항만 북부에는 송전만((松田灣), 남부에는 덕원만(德源灣)이 있는데, 원산항은 덕원만에 위치하고 있다. 항만 입구에는 대도(大島), 신도(薪島), 모도, 웅도, 여도(麗島), 황토도 등 크고 작은 20여 개의 섬들이 자연적인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으니 자연적인 요세를 이루고 있었다. 해상 작전에서는 지상전과 달리 우리 해군 함정과 UN군 함정들이 북한 해역을 철통 봉쇄하고서는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원산 항만 적의 코 앞에 있는 여러 섬들까지 우리 해병들이 상륙 점령한 후, 계속 적의 후방을 위협하고 교란 하면서, 첩보 수집 활동을 전개하였고, 또 해군 함정들은 원산으로부터 성진 근해까지의 해상을 봉쇄하여, 소련으로부터 들어오는 군수 물자의 해상 수송로를 차단하였고, 또 매일 밤, 함경남도 단천(端川) 인근, 해안선을 따라 지나가는 철도를 공격 함으로써, 군수 물자의 철도 수송도 계속 차단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 측은 군수 물자 보급의 차질로 인한 전력의 약화, 그리고 한국군과 UN군이 언제 원산으로 상륙해 올지 알 수 없는 염려 때문에, 많은 병력을 원산 인근에 묶어 둘 수 밖에 없었으니........ 이로 인하여 지상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지상군의 작전을 크게 유리하게 조성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원산 항만 봉쇄 작전의 수행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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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항만(영흥만) 지도 

 

    그리고 원산 항만에 있는 여러 섬들을 점령하고 있는 해병들과,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해군 함정들은, 북한 해안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포대의 동향과, 적함들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고 있으니, 북한군 입장에서는 함정과 해병들이 그들의 눈에 든 가시와 같았다. 그래서 북한군은 우리 함정과 해병들을 향하여 자주 해안포로 공격을 가해 왔고, 때론 북한 해군들이 목선을 타고, 해병들이 점령하고 있는 섬으로 기습해 오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해역은 항상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서 임전하고 있었다. 이렇게 위험이 계속되는 곳임으로 섬들을 점령하고 있는 해병들은 해군 함정을 하늘같이 믿고 있었고, 함정들은 해병들이 수집한 첩보를 토대로 새로운 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이와 같은 중요한 작전을 우리 해군은 1951년 2월 14일부터 휴전 될 때(1953년 7월 27일)까지 계속 수행 하였었다.

    

3. 필자가 충격 받았던 내용

    가. 우리 해군 함정의 침몰

      필자가 전보를 중계할 때 충격 받았던 내용의 요점은, "원산 항만 봉쇄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해군 함정 PC-704함이 적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 하였다는 안타까운 보고 전문이었다. 필자는 그 때 보고 문서를 중심으로 다른 곳에서 입수한 내용들을 가미하여 아래에 기술한다. 

 

       1951년 12월 23일 해군 본부로부터 작전 명령을 하달 받은 704함은, 1951년 12월 24일 밤 10시, 부산항을 출항하여, 12월 25일 원산 해역에 이르러, 원산 항만 봉쇄작전을 수행 하고 있는 703함과 임무 교대하였다.

 

      그날 따라 원산 항만 일대에서 작전하고 있는 아군 함정들은 원산(元山) 인근에 있는 적 해안 포대로부터, 여러 차례 박격포와 야포 등의 공격을 받았고, 또 갈마반도(葛麻半島)와 호도반도(虎島半島)에 있는 적 포대로부터 날아오는 직사포 등의 공격도 계속 받았기 때문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서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 때 704함은 호도반도 근해를 경비 하였는데, 이 곳은 영흥만(永興灣) 가운데서 적진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적탄이 함정 인근에 떨어지는 순간, 다른 함정들은 전속 항해하여 사격 범위 밖으로 이동해 나갔으나, 704함은 단독으로 적진을 향해 더욱 가까이 들어갔다. 그럴 때 적이 쏜 포탄이 704함 가까운 해상에 다시 떨어졌다. 함정보다 훨씬 높은 물기둥이 치솟았으나, 704함은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적탄을 뚫고 기동하면서, 적 진지를 향해, 주포인 3inch 포와, 40㎜, 20㎜ 기관포 등, 전 화력의 집중 포격으로 적진을 강타 함으로써, 적을 침묵하게 만들었으니, 우리나라 속담에 있는 말처럼,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704함이 실제 보여 주었기에, "고추함"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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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기 전 PC-704함(지리산호)의 위용

  

      1951년 12월 26일, 이날은 폭설과 풍파가 심하여 항해하기 어려운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도 폭설과 파도와 싸우며 해상 경비에 임하고 있던 704함은, 북한군이 원산 서북방에 있는 성남리에 기뢰 및 지뢰 등을 은폐해 두고, 야간을 이용하여 트럭으로 운반하여 원산항만에 방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하였기에, 폭설과 폭풍이 심하지만, 적으로 하여금 기뢰 부설의 틈을 주지 않으려고, 결사적인 각오로 항만 깊숙한 해역까지 들어 갔다. 고추함의 별명을 얻은 704함은 목표지역에 맹렬한 함포사격을 가함으로, 적의 기뢰 부설 원점을 폭파 시킨 다음, 외해(外海)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칠흑 같이 어둔 밤, 기상상태는 최악이었고, 적이 부설한 기뢰가 많이 있는 위험한 해역이기 때문에, 함장인 이태영(李泰永) 소령(전사 후 중령으로 추서)은 전 승조원에게 기뢰가 많이 부설되어 있는 해상을 지금 통과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함정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독려하였다. 이태영 함장 이하 전 승조원은 필사의 노력과 온갖 지혜를 다하면서 항진 하였으나, 1m 전방도 볼 수 없는 악천후로 인하여, 불행하게도 적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됨으로써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침몰하였다.

       

    나. 첩보 부대원들의 사고 수습

      704 함정이 침몰한 인근 해역 도서에 있던 해병들이 한 밤중에 큰 폭음을 들었으나, 야간인데다가 기상 상태가 험악 하였기 때문에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 시간 해안을 순찰 중이던 초병이 전파되어 부유하는 함정의 잔해를 발견하면서, 수색을 시작하게 되어, 도서 인근 해상에서 30여 구의 시체를 발견 함으로써, 704함의 침몰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수은주가 영하 20도(섭씨) 밑으로 내려간 추운 날임으로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전우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목선을 타고 험난한 파도를 헤치면서 해상을 수색 하였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돌섬을 향해 가다 보니, 세 사람이 밧줄(rope)로 연결한 채 해상을 표류하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죽은 자, 또 나무 조각을 이용하여 표류하다가 죽은 자, 돌섬까지 헤엄쳐 가서 죽은 자, 돌섬 바위 위로 수m 높은 곳까지 기어가서 얼어 죽은 자 등을 모두 수습하니, 50여 구의 시체가 수습되었다고 한다. 

 

      침몰한 704함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16일부터 우리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6척의 주력함 중의 하나로, 예속 함정을 지휘 하면서, 미국 함정과 함께 원산 인근 해역을 봉쇄작전을 수행하던 함정이다. 그런데 이 함정이 애석하게도 적이 방류한 기뢰에 접촉하여, 1951년 12월 27일 원산 항만 근해에서 침몰 함으로써, 함장 이하 전 승조원 58명이 애함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 하였다고 하니........ 세상 물정 모른 나이 어린 저로서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임을 충격과 함께 깨달았다

      소년 필자의 생각은 "얼마 안가면 나도 해상 근무를 하게 될 것임으로, 그 때 가선 나도 저들처럼 차디 찬 바다 물 속에서 싸늘한 시체가 될 경우를 맞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충격에 빠져, 몇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세웠다. 밤을 새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내일 당할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믿음 생활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을 다해야 하겠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짐하게 되었다. 

 

      물론 그 때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복음성가가 한국에 보급되기 훨씬 전이었다. 세월이 흘러 1980년 대 어느 날, 이 복음성가를 처음으로 대하였을 때, 옛날 해군 묵호경비부 통신대에 근무하던 소년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머리에 다시금 떠 올랐다. 어린 저에게 큰 충격을 가했던 704함의 침몰 사건......, 함정 침몰로 전 승조원 58명이 전원 전사 하였다는 생각......, 비보가 담긴 전보를 떨리는 손으로 수신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중계 타전했던 일......, 충격을 받고 몇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 나도 멀지 않아 해상 근무가 시작될 것인데, 행여나 저들처럼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일...... 등 등의 여러 가지 내용들이 머리 속으로 계속 찾아 왔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 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좁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의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 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하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사명 이루소서 

  

만왕의 왕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백성을 구속하는 참 구주가 되시네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나의 믿음 지키고 순교자의 신앙 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

불과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 계셔 천국 가는 그날까지 주여 지켜 주옵소서  아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복음성가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FBDVtgQOLw4

               

4. 침몰한 704함이 수행하던 작전을 수행

      704 함정의 침몰 사건이 일어나고 몇 개월이 지난 1952년이었다. 육상 해상 교류 원칙에 따라 당시 19세인 필자는 침몰한 704함과 같은 종류인 PC-705함 승조의 명령을 받고, 704함이 수행하던 원산항만 봉쇄 작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PC-705함(한나산함)을 승조한 필자는 원산항만을 봉쇄하면서 아래와 같은 작전들을 수행 하였는데, 먼저 글에서 밝힌 사항에 대하여는 그 제목만을 기록하겠다.

  

        필자가 PC-705함을 타고 한국 전쟁에 참전한 내용에 대하여는, 아래 글에서, 이미 자세히 언급한 바 있음으로, 중복되는 점은 피하려고 한다. 만약 그 내용을 읽지 못한 분은, 그 글을 먼저 읽으면, 이 글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이다.

 

    (붉은 글씨로 밑줄 친 곳을 클릭)

    [하와이 기행 #2  (추억 속의 뱃길 7년)]

"마. 함정과 함께 남긴 추억의 뱃길", -  "(1) 필자가 승조한 705함"으로 이동하면 볼 수 있음

       http://www.irvinesarang.org/zx1/?mid=bulletin_guestbook&page=2&document_srl=150928

 

    [한국전쟁과 참전기]

"자. 필자가 승조한 705함의 작전"으로 이동하면 볼 수 있음

       www.irvinesarang.org/zx1/?mid=bulletin_guestbook&page=9&document_srl=24488

             

     가. 필자가 승조한 함정의 작전 내용

        1) 북한군 선박의 출입을 봉쇄하고, 

        2) 초계 중 북한군이 방류한 기뢰를 발견하면 즉시 함포로 가격하여 폭파 하였으며, 

        3) 함경남도 단천 인근 연안을 지나가는 철도 파괴로 북한군의 군수 물자의 보급 차단, 

        4) 인근 해안에 북한이 구축해 둔 해안포 시설의 포격, 

        5) 해병 첩보 요원들의 입북과 귀환 작전 지원으로 북한군의 군사 정보 수집,

        6) 원산 항만 도서를 점령하고 있는 해병 첩보 부대원의 보호,

        7) 궁극적으로는 북한군의 지상군 병력을 원산 일대에 묶어두는 일들을 위해 수행한 작전이다. 

     

    나. 원산항만 봉쇄 작전의 위험성

        1) 부유 기뢰가 특히 많았던 해역

        2) 함정 피해가 많았던 해역

        3) 북한군의 해안포 공격이 많았던 곳

        4) 704함의 침몰 사건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같은 해역에서, 같은 유형의 함정을 타고, 같은 작전을 수행하는 것임으로,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어,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의 심리적 압박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다. 주님을 의지하게 되다

      작전 명령을 받고 진해 모항에서 포탄을 적재하고, 유류를 채우고, 청수와 주부식을 적재한 후, 고동을 울리면서 모항을 떠날 때는 "내가 다시 살아서 이 항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염려 하면서, 출항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 하였다.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전선으로 가고 있으니,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선에서 모항으로 돌아오면, 이번에도 주님께서 이 죄인을 또 지켜 주셨음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싶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목사님을 만나 뵙고 싶은 생각이 불 일듯이 일어났기에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바로 진해 동문에 있는 해군 군인교회였다. 

 

      전쟁이 일어나고 한 참 지난 어느 주일이었다. 의지할 자 없이 외로운 가운데서 세상 풍랑을 혼자 헤치면서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이, 그 날도 전선에서 돌아왔으니,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진해 동문에 있는 해군 군인교회를 찾아갔는데, 대위 계급장을 달고 단 위에 서서 예배를 인도 하시는 목사님을 보고 소년은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단상에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전덕성(全德成) 목사님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필자가 섬기던 영월읍 교회를 담임 하시던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그간 영월 땅은 전쟁으로 인하여 관할권을 남과 북이 뺏겼다가 빼앗기를 반복하던 곳이기에, 그 때까지 필자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사 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다 매월 한 차례씩 위험한 전선을 다녀와야만 하는 고아 같은 외로움 속에서 살고 있었으니, 고향에서 섬기던 목사님을 만나는 것은 부모님을 만나는 것과 전혀 다름 없는 크나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라. 위험 가운데서 지켜 주신 주님

      한국 인근에 있는 바다는 태평양이나 인도양처럼 사나운 풍파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 연해도 바다는 바다이기에, 풍랑이 심하게 일었을 때는 Pitching 33도에 Rolling 48도까지 흔들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렇게 심하게 흔들릴 때는 평소 잘 견디던 승조원들도 먹은 것을 토하면서, 힘 들어 하였다. 때론 함정 보다 더 높은 거센 풍랑 속에서 잠수함처럼 물속을 뚫고 항해할 때는,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아이구 또 뱃놈이 되었네"라면서 힘들어 하곤 했다. 이 말은, 평소 해군 군인들 세계에서 "파도가 없을 때는 잔잔한 물위에서 배 타고 신선놀이 하는 양반이지만, 일단 파도가 일면 뱃놈으로 돌변한다"는 말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말이다. 

  

      1). 풍랑으로 선박이 흔들리는 용어에 대하여는, "하와이 기행 #3, 유람선에서 배멀미"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하와이 기행 #3  유람선에서 배멀미]

www.irvinesarang.org/zx1/?mid=bulletin_guestbook&page=2&document_srl=150952

 

      2). 해군 군인이나 선원들이 폭풍 속에서 항해할 때 당하는 고통이 어떤지를 알려 드리려고, 필자가 탔던 군함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동영상임.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군함과 선박 모습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8dZK-3f8o3s

 

      언재인가는 필자가 승조한 함정의 한쪽 엔진이 고장 나서, 3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풍랑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북한 비행기 2대와 대치한 가운데서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 길에 섰던 때도 있었으며......, 북한의 해안포와 포탄을 주고 받는 작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또 함정을 수장 시키는 기뢰를 발견하여 함포로 가격하여 폭파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매일 밤 함경남도 단천(端川) 인근 해안에서 군수 물자를 싣고 지나가는 열차를 폭파하기 위해, 육지에 근접하여 철야 작전을 수행하였을 때...... 등 등, 그와 같은 작전을 수행할 때는 잠시 후 내가 어떻게 될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위험 속에 있었으니, 마음이 착잡한 가운데서 지날 수 밖에.........

 

      그와 같은 위기 가운데 있을 때는, 입을 벌려 큰 소리로 기도하고 싶고 또 찬송을 부르고 싶었지만, 전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눈을 뜨고 "주여 지켜 주옵소서"라고 소리를 내지 못하고 생각 속으로만 기도할 수 밖에....... 달 밝은 어느 날 적전 해상에서 작전하고 있을 때였다. 함교(艦橋 = Bridge)에서 견시(見視) 근무를 하고 있는 신병의 얼굴을 달빛을 통하여 보게 되었는데,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소년의 심중에도 두려움과 외로움이 찾아오더니, 생사 조차 알 수 없는 부모형제 생각 속으로 깊이 빠지면서,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라는 "꿈에 본 내 고향"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면서, 바로 내 인생이 그 와 같음을 탄하면서, 외로움과 두려움 속으로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

    

         꿈에 본 내 고향

 

1.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차마 못 잊어.

 

2. 고향을 떠나 온 지 몇몇 해련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꿈에 본 내 고향 찬양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yvkkc62Zo2E

 

     그럴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주님의 음성이 소년의 고막을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아 내가 왜 이렇게 약해졌나"를 깨달으면서, 학창 시절 즐겨 부르던 합동찬송가 372장 "저 먼 바다 파도 위에"가 머리에 떠 올랐다. 작전 중이라 소리 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에서 찬송을 부르자, 두렵고 외로운 문제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옛날 합동찬송가 372장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1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배 젓는 선부는 그 사나운 바람 불 때 늘 혼자 당하나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2 저 캄캄함 금광 속에 금 캐는 광부는 그 말할 수 없는 운명 제 뒤를 따르나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3 저 참담한 전쟁 중에 나가는 용사는 그 비참한 죽음 앞에 맘 서늘 하여도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4 저 바다에 행선할 때 땅 속에 금 캘 때 저 전쟁에 싸울 때도 늘 안심 될 것은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찬송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pR1u3L01l5o

        

      704함 전 승조원이 12월의 겨울 밤, 차디 찬 물 속에서 떠 돌다가 죽었다는 바로 그 해역에서, 같은 종류의 전투함을 타고, 같은 종류의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철부지 소년으로 하여금 거센 풍랑을 헤치면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하시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었고, 또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와 같은 순간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7년이라는 세월을 잇게 하시더니, 1957년 봄 주님께서 특별히 내려 주신 은혜의 선물로 동남아 원양 항해를 갔다 오니, 바라고 바라던 군복을 벗는 군인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해 주셨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위험한 가운데서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선을 누비면서,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사이도 무사히 통과 했고, 기뢰가 깔려 있는 바다를 지나갔지만 그 속에서 보호해 주셨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운 일들이 수 없이 많았지만, 넘는 고비 고비 마다 주님께서 지켜 주셨기에 오늘이라는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주님의 은혜 무한 감사하다.

    

5.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가. 미군들의 세계에서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UN 산하 16개국에서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병력이 파견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온 나라는 미국으로, 원산 항만 봉쇄 작전을 수행한 것도 미국 해군이다. 그런 까닭에 위험한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미군들 세계에서도, 불시에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임할지 항상 초조한 가운데서 작전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 함정과 미국 함정이 작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해상에서 계류(Alongside)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그 때 미국 해군 군인들이 새로 발표된 노래라면서 자주 부르는 가요가 있었다. 그 노래는 바로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하여 만든 노래 "I went to your wedding"이라는 노래이다. 우리 나라 대중 가요에도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여 만든 노래, "전우야 잘 자라"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 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많은 노래들이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 세계에도 한국전쟁과 관련 있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 해군들이 자주 미국 해군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귀로 듣고서는 따라 부리면서,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배워 부르게 되었었다.

 

        I went to your wedding

 

 I went to your wedding Although I was dreading The thought of losing you

The organ was playing My poor heart kept saying 

"Your dreams, your dreams are through"

You came down the aisle, wearing a smile A vision of loveliness

I uttered a sigh, whispered goodbye Goodbye to my happiness

Your mother was crying Your father was crying And I was crying too

The teardrops were falling Because we were losin' you

You came down the aisle, wearing a smile A vision of loveliness

I uttered a sigh, whispered goodbye Goodbye to my happiness

Oh, Your mother was crying Your father was crying And I was crying too

The teardrops were falling Because we were losin' you

 

[I went to your wedding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AR-_JC36vXM

 

      이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1950년 한 미군 병사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관계로, 명에 따라 한국 전쟁에 파견 되어 싸우던 중, 행방불명의 지경까지 이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구사일생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귀향(歸鄕) 하였는데, 웬 말인가? 자신이 굳게 믿고 장래를 약속했던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이 실종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한 그는, 그녀와 그녀의 부모들을 모두 만나, 헤어질 수 없는 심정이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슬픔과 아픔을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다는 사연이 담겨있는 노래이다. 그런 뜻이 담겨 있는 노래이기 때문에 한국 전쟁에 출정한 많은 미군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본다. 만일 인간이 자신에게 임할 장래의 일을 알 수 있는 존재라면 ........

 

      그 때 우리 해군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필자는 당시 20세도 안된 풋내기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같이 승조하던 상사와 전우들 가운데는 30이 훨씬 넘은 자도 있었고, 또 처자를 두고 전선에 나와 있는 자도 있었으며, 정혼한 자가 있는 이도 있었는데, 모두 전쟁으로 인하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참전한 자들이었으니 ...... 그 가사가 지니고 있는 의미심장한 사연이, 행여나 자신에게 임할지 알 수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던 노래라고 생각된다. 만약 내일 일을 알 수 있는 인간이라면........., 이와 같은 비극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인생이었다.

  

    나. 함정과 함께 피해를 입은 우리 해군 군인들도 마찬가지 

      해방 직후 우리 군 내부에는 북조선 노동당에서 침투 시킨 세포원들이 여러 척의 함정을 북한으로 납치해 갔다. 그 몇 가지 실례를 든다면 1948년 5월 7일에는 JMS 통천정이 주문진 근해에서 납북되었고, 1948년 5월 15일에는 YMS 고원정이 새로운 경비 구역인 묵호 방면으로 배명 받고 가다가 납북되었으며, 1949년 5월 11일에는 YMS 508(강화정)정에 전대 사령이 탑승하고 전선을 시찰하다가, 전대 사령은 살해 당하였고 함정은 북으로 끌려갔다. 만약 승조원들 가운데 잠시 후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모두가 "내일 일은 날 몰라요"의 우준한 존재이기에, 살해 당한 자도 있었고, 생 지옥 북한으로 끌려간 자도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 된다......... 

 

      휴전 후에 있었던 일들을 예로 들겠다. 1967년 1월 19일 PCEC 56함(당포함)이 동해 휴전선 인근 해상에서 어선 경비를 수행 하던 중, 북한군의 해안포 가격을 받고 침몰 당함으로써, 56명의 장병이 전사한 바 있고, 2002년 6월 29일에는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2차 연평 해전으로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해군 장병이 애함과 함께 전사한 사건도 있으며, 또 2010년 3월 26일에는 천안함이 북함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여 46명의 장병이 전사하는 등......., 여러 건의 함정 피해와 함께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에 관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 모든 사건들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보면, 역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인간 세계이기에, 속절 없이 당한 피해라고 생각된다.

  

6.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가. 인간의 지능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는 과학문명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현재 학 박사가 되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통달 했다......, 권좌에 앉았다......, 가진 돈이 많다......, 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면서, 무엇이던지 다 할 수 있다고 자만에 빠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능력은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성경을 기록한  지혜자는 잠30:2-3에서 무엇이라고 교훈하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라고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알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을까? 하나님의 전지 전능 하심과, 영원 하심과 광대 하심에 인생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비교해 보라. 인생의 한 평생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보면 한 경점과 같이 짧은 순간이고(참조 시90:4),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에 비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참조 고전1:25). 그러므로 잘났다고 뽐내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나,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했다고 고개도 잘 들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나님 보시기엔 모두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인생의 존재가 그와 같이 우준한 존재이기에, 몇 초 뒤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나. 심판을 대비하는 자가 슬기로운 자

      히9:27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병에 걸려 치료가 힘들거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아니한 사람을 가리켜 시한부 인생이라고 흔히 말한다. 엄밀한 의미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사는 모든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모두가 영원히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인가는 죽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가? 히9:27은 밝히기를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겠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심판 결과에 따라 영생하는 천국으로 가는 자도 있고, 영벌 받는 지옥으로 가는 자도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필자가 미국으로 이민 오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Costa Mesa 쪽에서 55번 Freeway East 타고, 405 Freeway 쪽으로 운전하고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탄 젊은 이가 쏜 살 같은 속력과 지그재그 운전으로 내 옆을 추월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2-3분이 지난 후부터 교통 정체가 일어나더니, 모든 차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차선이 한 곳으로 합해지는 순간 필자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조금 전 내차를 추월하던 그 청년이 대형 화물 차량과 충돌하여 피투성이가 된 시체로 오토바이와 함께 노상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적 있었다.

 

     바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은 자신이 오래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가 불신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가 늙으막에 가서 한꺼번에 죄를 회개 하겠다면서, 회개를 미루면서 심판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 입성이 거부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잠시 후 자신에게 닥칠 일을 모르기 때문에,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후 심판을 대비 하는 문제이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여행을 마친 나그네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셨으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분명 본향 임으로, 그곳으로 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런데 준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본향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가 달라지게 되어 있으니, 천국 본향으로 가기 위한 준비가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세상 떠날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년 만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고서는, 준비 없이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지금 당장 자신의 인생에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걱정 없이 편안한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슬기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하면 내일에 대한 염려가 없게 된다

      롬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자신의 힘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요3:16에서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영생의 길을 주셨으니, 지난 날의 죄가 아무리 크고 무겁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의로 여기심을 받게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회개란 어떻게 하는 것이 참 회개인가?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함을 받는 것이 무엇 보다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 가던 길에서 180도 전환하여,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진리의 길로 가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죄악 된 행동을 범하지 아니하는 소극적인 고침도 있어야 하고, 그 뿐 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의와 선을 행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성도들은 주님을 내 심중에 손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고, 상전으로 모시고 상전이 내리는 명령에 절대 순종하면서 사는 자로 변신하여야 한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탕자가 회개한 것처럼 진정한 회개를 선행한 다음, 주님을 경외 하면서 주님의 뜻에 합하게 사는 성도가 꼭 되어, 하나님께선 기뻐 하시고, 각자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리시게 되는 복 된 성도들이 모두 되시기를 소망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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