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원작명 :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서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은 약 2000년 전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도망가던 베드로가 홀연히 나타나신 주님에게 한 말이다. 이것을 주축으로 하여 만든 영화의 제목이 바로 "쿠오바디스"이다. 필자는 아주 오래 오래 전에 "쿠오바디스"라는 영화를 관람한 적 있었다. 당시 너무나 감명 깊게 본 영화였기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몇 일전 혹시나 하는 생각 속에서 "주여 어디로 가시니아까"를 검색하다가, 보기를 원했던 영화 "퀘바디스"를 다시 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영화는 나약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영원한 내세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 굳건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영화이다. 그래서 필자는 영화의 중요 골자를 추려 여기에 소개하면서, 다시 보기 원하는 분에게는 볼 수 있게 하려고,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 할 점이 있다. 인터넷 상에는 "쿠오바디스"라는 똑 같은 제목을 가진 다큐맨타리 영화가 떠돌고 있는데, 이 영화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앙양시키기 위함 보다, 한국 기성교회를 헐 뜯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물론 교회 가운데는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된 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이단 종파도 있고, 또 문제의 영화를 제작한 분들의 주장처럼, "교회는 점점 커졌고, 예수는 점점 작아졌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아들 목사가 다음 주인"이 되는 교화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전혀 관련 없는 교회를 그와 같은 교회인 것처럼 주장한다거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교회인 것처럼 싸잡아 헐뜯는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부풀려진 주장과 잘못된 선전에 넘어가지 않도록, 각별 유념하기 바라는 바 간절하다.

  

1. Quo Vadis, Domine의 작품성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작품은 1896년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센킨비치(Henryk Sienkiewicz)가 쓴 작품으로, 기원 1세기 중엽 로마 네로 황제가 집정하고 있을 때, 로마 대화재 사건의 방화를 기독교인들이 한 것이라고 뒤집어 씌워 많은 기독교인들을 핍박 학살한 사실을 여과 없이 밝힌 작품이다. 당시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전하기 위해 로마에 온 베드로와 바울 두 사도에게, 갖은 핍박을 가하였지만, 그들은 결코 굽히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면서,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부각 시킴으로써, 폴란드가 포학한 로서아 정부의 박해 아래 있는 것을 은연 중 나타내어, 민족적인 큰 희망을 고취하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영화 평론가들은 평하고 있다. 1905년 드디어 이 작품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함으로써, 많은 예술인들이 이 작품을 인용하기 시작 하였다. 

 

      "쿠오바디스 도미네"라는 이 작품은 1896년과 1900년에 연극화 하여 흥행 되더니, 1902년에 이르러서는 간단한 무성 영화로, 1912년에는 초 대형 무성 영화 만들어졌고, 1924년에 처음으로 영화화 하였다. 그리고 1951년에는 미국 "머빈 를로이(Mervin LeRoy)" 감독이,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데보라 카(Deborah Kerr)", "피터 유스티노프(Peter Ustinov)" 등의 유명 배우들을 대거 출연 시켜, 현대식 영화로 탈바꿈 하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관람자에게 큰 감동을 주는 기독교 영화의 지위를 굳혔다. 그 후1985년에는 텔레비전 영화가 만들어졌고, 2001년에는 폴란드어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영화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1896년 처음으로 소설이 발표된 후, 120 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지금까지, 이 내용을 소제로 한 많은 영화들이 제작 되었다.

 

      아주 오래 오래 전 처음으로 필자가 1951년 판 영화를 보고 난 후, 제작진들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생각하면서 크게 감탄한 바 있었다. 제작진들이 공 들였던 점을 거론하면, 방대한 시설의 원형 경기장을 다시 만들었다는 점, 로마 제국의 화려한 궁전을 세트로 만드는데 성공하여, 고전적인 풍미를 실감나게 재현 시켰다는 점, 그리고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사나운 소와 사람과의 싸움, 그리고 사자에게 사람이 물어 뜯기는 장면 등, 이와 같은 장면들을 촬영하다가, 자칫 잘못되면 출연자의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고 있음에도, 촬영에 성공하였다는 점, 그리고 어떻게 그 많은 군중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 .......등 등, 큰 감동을 받으면서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바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동을 준 내용으론, 체포된 베드로가 "나와 같은 죄인이 어찌 주님과 똑 같은 모습의 형벌을 받을 수 있느냐"면서,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못박혀 죽는 장면을 볼 때였다. 실수 많은 베드로지만 회개 하는데는 주저하지 않았고, 또 주님께 대한 충성심이 강한 자이기에, 순교하는 자리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충성하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와 같은 순교의 역사가 일어난 후 오랜 세월이 지나간 지금, 베드로의 충성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무덤이 있었다는 장소에는 "성 베드로 교회"(SaintPeter's Basilica)"가 세워졌고, 또 그가 도망가다가 주님을 만났다는 장소에는 도미네 쿠오바디스(Domine Quo Vadis) 교회가 세워져 많은 순례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볼 수 있다.

 

2.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

 

    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으면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열 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시자, 가룟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향하여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러자 가룟 유다는 만찬이 끝난 후, 곧 바로 주님을 떠나 바깥으로 나갔다는 말씀이 있다(마26:21-25 그리고 막14:17-21).

 

      이와 같은 말을 들은 베드로는 걱정이 되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시 묻기를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아뢰이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또 다시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다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통곡하면서 회개 하였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요13:36-38, 마26:69-75).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내 양을 먹이라"고 세 차례 당부하신 다음,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5-19)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베드로의 십자가 순교를 예고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이 여러 말씀들을 통해 볼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충성 하겠다고 다짐하였지만, 연약한 인생이기에 순종과 배신을 반복 하였었다. 인간 베드로는 나약하지만, 주님이 함께하는 베드로로 변신 하였을 때는, 강하고 담대하여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다가 드디어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목숨을 버린 위대한 순교자가 되었다.

 

    나). 외경 베드로행전에서 찾은 근거

      우리 민족에게 "심청전" "흥부전" "춘향전' 등의 고대 문헌들이 있는 것처럼, 히브리 민족에게도 고대 문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종교적인 문헌도 예외 없이 많이 있다.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신구약 성경 66권만을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카톨릭교회와 다른 일부 교회에서는 신구약 정경(正經) 66권 외에 외경 중 일부를 제2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거나, 카톨릭교회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경전으로 인정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러면 그와 같은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그 것을 가리켜 외경, 또는 위경(僞經)이라고 말하는데, 모두가 정경에 들어갈만한 가치가 없음으로 심사에서 탈락한 문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외경으로 구분되어 있는 베드로행전 35장을 보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내용을 여기에 소개 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지 만 36년이 되었을 무렵이다. 베드로행전 제33장-34장을 보면 베드로가 정결(貞潔=행실의 깨끗함)에 관한 설교를 하였더니, 그 설교로 인하여 로마 시(市) 총독인 아그리파의 소실(小室) 4명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아그리파를 떠나게 되었고, 또 많은 귀족들의 후실(後室)들이 남편과 헤어지거나 부부 생활을 거부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분노한 아그리파와 많은 귀족들이 베드로를 잡아 없이 하려고 공모하여, 드디어 네로 황제를 움직여 베드로에 대한 체포령을 발령하게 만들었다.

 

      베드로행전 35장으로 내려가 보면, 베드로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것을 알게 된 크산티페를 비롯한 마르첼로와 또 다른 여러 형제들이 베드로에게 로마를 빨리 떠나라고 권고하자, 베드로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배신자처럼 달아나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런 게 아니지요. 다만 로마를 떠나면 당신은 계속해서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라고 설득함에 따라, 베드로는 형제들의 말을 받아 들여, 로마를 떠나면서 “아무도 따라오지 마십시오. 나는 변장을 하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박해를 피해 도망 길에 올랐다. 

 

      베드로가 막 로마 성문을 벗어나는 길에 이르렀는데, 베드로의 눈 앞에 로마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깜짝 놀란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라고 물었더니,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다시 베드로가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반문하니, 주님께서는 “그렇다, 베드로야.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다” 라고 같은 말로 대답하시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주님께서는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기쁨이 넘친 가운데 주님을 찬미하면서, 하늘로 올라 가시는 예수님께 "주여! 나는 로마로 되돌아 가서, 십자가에 못박힐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한다. 

 

주 : 베드로행전(한글 번역판)

 

    35장

      그 공모를 알게 된 크산티페가 베드로에게 알려주고는 로마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마르첼로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그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배신자처럼 달아나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런게 아니지요. 다만 로마를 떠나면 당신은 계속해서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가 형제들의 말에 복종하여 혼자 로마를 떠나면서 “아무도 따라오지 마십시오. 나는 변장을 하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는 주님을 보았다.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주님께서는 “그렇다, 베드로야.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베드로가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베드로는 기쁨에 가득 차서 주님을 찬미하면서 로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에 못박힐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일이 베드로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36장

      형제들에게 돌아가서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시를 전해주었다. 슬픔에 잠긴 형제들이 울면서 “젊은 저희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다시 떠나가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주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신앙을 더욱 굳세게 만들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오래도록 살려두시겠다면 난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데리고 가시겠다면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마 군사 네 명이 와서 그를 잡아다가 아그리파에게 데리고 갔다. 아그리파는 베드로를 독신죄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 과부와 고아, 건강한 사람과 불구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베드로를 바라보고 또 그를 구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아그리파여, 베드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이오? 그가 죽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실까 두렵소.”라고 고함쳤다. 베드로가 조용히 하라고 진정시킨 뒤에 “나를 통해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기적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각자의 행실에 따라 보상하실 때까지 그분을 기다리십시오. 아그리파는 자기 아버지의 하인이니 그에게 화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가는 것을 왜 꾸물거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37장-39장

      십자가에 가서 베드로가  “오, 십자가의 이름! 숨겨진 신비여! 십자가의 이름으로 표현된 형언할 수 없는 자비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인성이여! 오, 형언할 수 없고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이여! 지상의 경력을 끝내는 자리에서 나는 당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사형 집행자들이여, 내 머리를 아래로 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이 베드로의 말대로 거꾸로 매달았다. 형제들이 아멘으로 응답할 때, 그가 숨을 거두었다.

  

3. 네로는 어떤 인물인가?

 

    가). 출신 성분

      네로(Nero) 황제의 생존기간은 37년 12월 15일 - 68년 6월 9일이고, 재위기간은 54년 10월 13일 - 68년 6월 9일이다. 그리고 본 이름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고, 황제가 된 후의 이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이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정신 이상자나 폭군, 나쁜 짓만 일삼은 로마의 제5대 황제라고 생각하지만, 재임 초기 5년 정도는 선정을 베풀었고, 그의 통치 시대는 로마의 문화 부흥기였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에는 폭군이었으나 문화, 건축면에서는 잘한 면이 많이 있다는 말이다. 

 

      네로 황제는 로마 제국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의 조카라고 하나, 실은 친가 외가 모두 촌수가 걸려 있는 근친 간의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먼저 네로가 출생하기까지의 로마의 왕통을 살펴 보려고 한다. 시이저라고 이름하는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권력을 잡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황제 자리에 오르기 전에 암살 당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제1대 황제에 올랐고,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를 거쳐, 로마 제3대 황제에 칼리굴라가 오르게 되었다. 칼리굴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증손자이고, 그의 누나 아그리피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결혼하고 얼마 안가 남편과 사별한 관계로, 소생인 네로를 데리고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재혼)하였다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는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조카이고, 또 제1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의붓 아들이다. 제1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인 아그리피나가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을 했으니, 그야 말로 집안 내력이 복잡하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칼리굴라와 아그리피나 사이가 남매였으니,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와의 결혼은 삼촌과 결혼한 것이다. 비록 양자 관계와 의붓 아들이라는 점이 끼어 있으나, 서로간에 얽히고 설킨 집안에서 태어나 그 가운데서 자라났다. 

 

      네로 황제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이붓 아들이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정치적 야심이 너무나 컸던 관계로, 잡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재혼한 남편인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서기 54년에 독살하고서는, 네로 보다 세 살 적은 황제의 친 아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권을 이어 받도록 만들었다. 아그리피나의 전력을 살펴 보면,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그리피나의 세 번째 남편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는 두 번째 남편도 그녀가 독살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실로 무서운 여자였다. 

   

    나). 네로 황제의 어머니와 주변 여인들

      네로 황제는 서기 54년, 16세 때 황제의 위에 올랐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핑계 삼아 강력한 섭정으로 로마 정치를 주무르면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인 네로 황제를 기품이 있고 로마 시민에게 인기가 있는 옥타비아(Octavia)와 결혼시키려고 밀고 나갔다. 그러나 네로 황제는 어머니의 간섭과 결혼을 반대하다가 결국 어머니의 뜻을 물리치지 못하고 옥타비아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모자 간의 권력 다툼은 점점 심화하여 드디어 어머니의 정부(情夫)를 추방하고서는, 자기 보다 먼저 황제에 오를 뻔 했던 의붓 형제도 독살하였으니, 어머니를 꼭 닮은 독한 아들이 분명하다. 

 

      한편 황궁에는 클라우디아 악테라는 황녀(皇女=궁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노예 출신인 왕궁의 시녀였다. 한동안 네로 황제는 클라우디아 악테를 사랑하면서 가까이 하다가 다른 여인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멀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클라우디아 악테는 자신의 신분이 천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네로 황제에게 다가가지를 못했다. 그럴 때 포패아 사비나(Poppaea Sabina)라는 여자가 네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포패아는 유뷰녀로 그녀의 남편은 과거 네로 황제의 동성 연애 상대자였는데, 자신의 아내가 네로 황제와 사귀기 시작하자, 전격 이혼 함으로써 포패아는 네로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인이 되었다.

 

      포패아 역시 아그리피나처럼 권력에 대한 야망이 강한 여자라, 네로에게 달라붙어, 어머니(아그리피나)와 부인(옥타비아), 스승 모두를 내쫓고, 권력을 독차지하라고 부추겼다. 안 그래도 어머니의 강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네로는 드디어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는 이미 여러 차례 사람을 독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해독약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것을 네로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이는 방법에 대하여는 독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드디어 죽일 방법을 찾은 것은 배에 구멍을 뚫어 물에 빠트려 죽이려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물에 빠진 아그리피나가 헤엄을 쳐서 육지로 기어 올라오자, 해변에 대기하고 있던 네로의 하수인들이 쫓아가서 살해하고야 말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 자살로 끝난 네로 네로의 권력

      몇 년이 지난 후, 네로 황제는 아내인 옥타비아를 쫓아내었고, 강제로 이혼 처리한 후, 외딴 섬으로 유배 시키고는, 포패아를 황후에 앉히려고 하였다. 그러자 로마 시민들이 옥타비아를 제자리에 복귀 시키라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네로 황제는 시민들의 시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포패아와 결혼한 기념일을 맞이하였을 때, 옥타비아에게 죽음을 내렸다. 이 일로 인하여 로마 원로회, 그리고 로마 시민들 모두가 네로에게 등을 돌리자, 네로의 타락은 점점 극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는데, 바로 로마 대화재 사건이다. 서기 64년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14개 블록 중 10개 블록이 잿더미가 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네로 황제가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놓고, 술을 마시면서 시를 지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증거가 없음으로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화재가 난 후 네로는 불탄 시민들의 땅을 마구 사들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건물을 그 자리에 짓겠다고 나서자, 로마 시민들은 오해할만한 입장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하여 로마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게 되었다. 

 

      그러자 네로 황제는 그 잘못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기독교인들을 잡아 들여 죽이기 시작했다. 그 때 로마에 있던 바울과 베드로도 네로가 뒤집어 씌우는 방화의 범인이 되어, 바울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역십자가 형틀에 목박히는 사형을 당하였다. 연속적인 기독교인들의 박해로 민심이 극히 나빠지고 드디어 반란까지 일어나면서, 로마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자, 서기 68년 로마의 원로원은 회의를 열어, 네로 황제를 황제의 자리에서 해임 시켰다.

 

      드디어 네로는 왕궁에서 쫓겨났다.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파에게 복수를 당할 수 있음으로, 네로는 도망을 쳤다. 모든 사람들이 네로를 버렸지만 끝까지 함께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은 바로 옛날 네로가 한 때 지극히 사랑하다가 등을 돌린 클라우디아 악테였다. 그녀 역시 네로를 사랑했지만 신분의 차이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여인이기에, 외톨이가 된 네로 옆에서 끝까지 함께해 주었다고 한다. 추격자들에게 잡혀 죽게 될 지경에 이른 네로는 해방 노예 출신인 파온의 별장에서 단도를 자신의 가슴에 꽂아 드디어 자살 하였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 그 옆에는 겨우 악테 하나만 있었을 뿐, 네로의 최후를 위해 눈물을 흘린 자도 악테, 죽은 네로를 땅 속에 묻어준 자도 역시 악테 하나로, 폭군이고 독재자이던 내로의 권세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이 항목의 주 된 내용은 www.kiss7.kr에서 퍼와서 다시 정리했음).

 

      네로의 일생을 살펴 보면, 서기 55년에는 의붓 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 하였고, 서기 59년에는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였으며, 서기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 하였고, 또 서기 65년에는 정치 스승인 세네카에게 자살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여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당시 로마 제국의 신흥 종교를 신봉하는 기독교도들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대학살 사건을 자행하다가, 서기 68년 자살로 권력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4. "쿠오바디스" 영화의 줄거리

      

      필자는 이 영화 줄거리를 1951년 판 영화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작성할 때, 다른 영화에 나타나는  내용과 역사적인 내용들을 가미하여 작성하였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아래 5항에 명시한 1951판 영화에서는 "리지아"로, 5항 다)항에 명시된 영화에서는 "리기아"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제작한 국가에서 사용하는 발음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 된다.

 

    가). 개선 장군 비키니우스의 귀국

      로마의 귀족 청년이며, 드루실라의 남편이며 또 아이들의 아버지인 로마 군대의 14군단 사령관인 마커스 비니키우스(Marcus Vinicius)는 소아세아 지방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부하들과 함께 3년만에 로마로 돌아왔다. 비니키우스는 황제가 공로를 치하 하기 위해 열겠다는 연회에 참여하기 위해, 로마 재국의 귀족이며 황제의 총신(寵臣)인 숙부 페트로니우스(Petronius)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 사이 그는 로마의 군사적 지도자인 풀라우치우스(Plautius)의 집을 방문 하였는데, 그 집에는 인질로 잡혀와서 머물러 있는 리지아(Lygia)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되었다. 정원에서 비니키우스를 만난 리지아는 막대기로 모래에 물고기를 그려 자신은 기독교인임을 암시하였으나, 비니키우스는 리지아가 그린 물고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고, 또 아름다움에 홀린 나머지 그림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 황궁으로 들어간 리지아

      숙부 집으로 돌아온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연모한다는 사실을 숙부에게 고백하였더니, 숙부 페트로니우스는 조카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풀라우치우스의 집을 찾아가 직접 리지아를 만나 보았더니, 조카의 생각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카를 돕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계획 하였다. 그와 같은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불과 이틀 사이에, 리지아는 갑자기 황제의 명에 따라 근위병에게 이끌려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 이유는 리지아가 리지아 왕의 딸이라는 신분이고 또 인질로 잡혀왔기 때문에, 인질은 황제가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황제의 관리 하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궁내로 들어간 리지아는 황제의 명에 따라 옛날 황제의 애첩이었던 클라우디아 악트(Akte)라는 여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나게 되었다.

 

    다). 사랑의 싹이 트다

      그런데 갑작스레 리지아가 사라짐으로써,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찾으려고 수소문 하면서 찾던 중, 많은 기독교인이 동굴에 모여 예배 드리는 곳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설교문 아래에 명기) 비니키우스와 그의 신복 2명은 그 곳으로 몰래 들어가 거기에서 예배 드리는 리지아를 찾았다. 예배가 끝난 후 비니키우스 일행은 리지아를 미행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다가, 리지아의 충복인 우르수스(Ursus=힘이 센 장수)와 싸우게 되어, 비니키우스는 부상을 당하였고, 또 그의 신복 한 사람은 죽임을 당했으며, 한 사람은 도망 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부상 당한 비니키우스는 한 기독교인의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때 리지아가 그를 적극 보살펴 주는 것으로 인하여, 서로 간에 가까워져,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며......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후 비니키우스는 그녀를 얻기 위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주 ; 베드로의 설교 (동굴에서 드리는 예배)

 

      하찮은 내게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 여기에 교회를 지으시려고 주님께서는 저를 여기로 인도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주를 못 봤지만 마음으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저는 동생과 함께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였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을 때, 주의 음성이 갈릴리 바다에서 들려 왔습니다. 우린 몹시 피곤에 지쳐 해변에 다다르자 누군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곳을 보니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 분을 보았을 때 추위와 연약함은 없어졌습니다. "여기 있나이다" 하고 답하자 주께선 배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말씀 하실 수 있길 청하셨습니다. 우린 그에게 올라오길 허락했고, 그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 말씀 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그가 구세주 임을 알았죠. 그는 얘기가 끝난 뒤 제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그물을 던져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그물은 꽉 찼습니다. 제가 놀라는 걸 보시고 말씀하시길 "앞으로는 아무 걱정 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하셨고, 전 따랐습니다. 나와 동생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그를 따랐습니다. 12명의 제자가 모일 때, 목 마르고 배 고플 때, 주께서 음식과 음료수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주께서는 평안과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신의 아들이 아닌 사람은 명령을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주가 아니라면 누가 푹풍우를 잠재우시고, 베다니 동산의 나사로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막달라 마리아를 존경 하겠습니까? 저 역시 그 분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는 앞날을 알고 계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일입니다. "전 주님과 함께 감옥에 가서 죽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답하시길 "베드로야 오늘 밤 닭 울기 전 너는 세 번 나를 부정 할 것이다" 라고 하셨고,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재판정에서 그들은 저를 주와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는 그 사람을 모른다"라고 했지요.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갈보리란 곳에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 못 박힌 고통 중에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이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저의 부정을 주께선 용서 하셨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의 죽음을 못 막았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침묵하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갑자기 환한 빛이 비취더니, 우리 앞에 주께서 서 계셨습니다. 우린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서야 그가 주님인 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고 주께선 모든 자에게 성령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슬픈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 부를 것이요, 자비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요, 마음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 평화를 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리라,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내렸던 십계명을 모두 지키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통치자들과 그 법에 대해서도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학대에 고생을 하여도, 여러분의 정신까지 악의 목격자가 되어도, 폭력으로 대응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말씀하기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을 내 밀어라 하셨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해코지를 하더라도, 원수를 사랑 하십시오. 그들이 저주를 한다고 해도 축복을 내리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악의에 차서 박해를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잘 해 주십시오. 오 주를 믿으십시오. 모든 것을 주의 이름으로 견뎌 내면 축복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아멘. 

 

    라).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의 시작

      다른 한편 네로의 옛 애첩이었던 악트는 비니키우스의 남성다움에 반해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비니키우스는 리지아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게 되자, 질투심이 발동하여 네로 황제에게 기독교도들을 잡아 처형하도록 사주하게 되었고, 또 정신병자와 같은 네로 황제는 자신이 천재적인 예술의 영감을 통하여 얻었다는 우스광스러운 이유로, 로마 전역을 불태워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은밀하게 부하에게 방화를 지시하였다. 이로 인하여 발생한 화재로 로마 시민들의 원성이 비등하자, 그 원망 소리를 잠재우려고, 기독교인들이 방화한 것이라고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책임 지우는 방법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을 붙잡아 희생 시키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비니키우스도 기독교인인 리지아를 사랑한다는 죄를 물어 전승한 장군까지 감옥에 잡아 넣었다.

 

    마). 주님을 만난 베드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체포 되었지만, 베드로와 바울 사도가 잡히지 않은 것을 크게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시점, 네로가 기독교인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를 더욱 강화하자,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하려고 로마를 떠나 가는데, 베드로가 가고 있는 앞 한 나무에 빛이 솟아 오르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깜짝 놀라면서 주님인 것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더니, 주님께서는 "네가 버린 내 양들을 위해...... 내가 또 다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로 올라간다" 라고 대답 하셨다. 이와 같은 주님의 대답을 들은 베드로는 바로 발길을 돌려 핍박의 현장인 로마로 돌아가서, 수많은 신도들을 찾아 핍박 받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바). 사자에게 찢기는 기독도들

      경기장 관람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가두어 두었던 기독교인들이 채찍을 맞으면서 경기장으로 나온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두려워 하고 있는 곳에 베드로가 나타나, "순교자들에게 평화를!, 저들에게 평화를 내리소서 주여!, 당신의 자녀에게 평화를 내리소서, 주여 당신의 자녀들을 받아 주소서, 저들의 고통을 덜어 주소서, 저들에게 힘을 주소서, 오 구세주여, 신의 축복 예수의 이름으로 죽은 나의 아이들아, 오늘 너희들은 낙원에서 주와 함께 할 것이라. 네로의 권력은 오늘 뿐이지만, 그리스도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시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그 말을 듣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네로 황제는 "저들은 왜 노래를 부르느냐? 더 고문을 주다가 죽일걸 그랬구나"라고 말하면서 짜증을 낸다. 

 

      그럴 때, 네로 황제가 형을 집행하라는 신호로 팔을 들자, 사자 굴 문이 열리면서 굴에 있던 굶주린 사자들이 나타나 기독교인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어떤 기독교인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벽을 타고 도망치려던 교인은 사자가 뛰어올라 다리를 물어뜯어 먹는다. 하지만 교인들은 계속 찬송을 멈추지 않고 부른다. 눈물이 나고 소름이 돋을 만큼 너무 너무 잔인한 처형이었고, 기독교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찬송을 부를 만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가슴이 아픈 것은 많은 군중들이 그 광경을 보고 기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형이 끝난 다음 네로 황제가 직접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시체들을 살펴 보니, 어떤 여인은 머리가 없어졌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행복한 얼굴로 웃는 가운데서 순교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은 괴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 장군과 리지아의 옥중 결혼, 그리고 베드로의 순교

      아직도 감옥 안에는 2차로 처형할 기독교인들이 남아 있었다. 그 곳에는 베드로도 갇혀 있었고 비니키우스 장군과 그의 여인 리지아, 그리고 또 다른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비니키우스 장군은 얼마 전까지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리지아에게 말한 적 있었다. 그렇지만 리지아는 끊임 없이 그에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심어 주었고, 드디어 리지아가 베드로에게 청하기를 둘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함으로, 감옥 안에서 베드로의 기도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그 후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처형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달려 못박혀 죽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죽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하다고 말하자, 그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죽여 주겠다면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처형 하였다. 다시 한 번 베드로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고 존경 받을만한 인물인지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아). 화형 당하는 기독도들

      드디어 두 번째 처형이 시작 되었다. 한밤 중에 기독교인들을 나무에 메달아 놓고, 그 나무 아래에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처형이었다. 황제의 신하 하나가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서, 처형 당할 사람들에게 소리치기를 이 모든 짓은 네로 황제가 꾸민 짓이고, 로마에 불을 지른 것도 그렇고, 또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것 모두가 네로가 꾸민 일이라고 소리 친다. 그 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혼란이 왔는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채찍으로 때리면서 불을 붙혔다. 불길이 솟아 오리기 시작하자 나무에 달린 기독교인들은 다시 찬송을 부르면서 순교를 당한다. 이를 본 네로 황제는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영화를 시청하는 우리는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그들의 뜨거운 신앙심이 놀라우면서 부럽기도 하였다.

 

    자). 사나운 소와 싸워 이긴 우르수스

      그 후 어느날 또 다시 수많은 로마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네로 황제와 황후 포패아가 경기장 귀빈석에 나타났고, 처형장인 원형 경기장 안에 있는 큰 기둥에는 리지아가 묶여 있고, 리지아의 충복인 우르수스에게는 사나운 소와 싸우라고 한다. 이렇게 되자 기운이 천하 장사인 우루스스는 주인을 위해 죽기로 작정하고 소와 싸워 결국 소를 죽이고 승리의 손을 번적 든다. 싸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네로 황제는 저 거인이 소를 죽이면 모두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기에, 황제는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경기장 안에 있던 많은 시민들은 "살려주라"고 환호를 보내었지만, 주저하던 네로 황제는 죽이라는 신호를 내린다. 

 

    차). 네로 황제는 도망하였다가 끝내 자살

      네로 황제 옆에 묶여 있던 비니키우스는 이 광경을 보고, 가진 힘을 다해 포박을 풀고서는 근위병을 지휘하면서 원형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리지아를 구출한 후 포옹한다. 이렇게 되자 황제와 황후는 근위대까지 배반한 것을 보고 당황하면서, 하급 노예 몇 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로마 근교로 도망을 쳤다. 네로는 거기에서 황후의 말을 듣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황후를 몰 졸라 죽이고, 홀로 도망가고 있는 곳에 옛날 애첩으로 있다가 버림 받은 악태가 나타난다. 사태가 급박해 지자 네로 황제는 악태가 건네준 단도를 자신의 가슴에 꽂아 자실 함으로써, 폭군 네로의 인생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되자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보호하면서, 우르수스와 몇 명의 하인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새로운 인생과 자유로운 기독도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황혼이 깃든 로마를 떠나 행복한 곳으로 향해 간다.  

 

    카). 새로운 황조의 시작

      서기 68년 6월 9일 갈바(Servivs Sulpius Galba)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은 네로 황제가 숨어 있는 곳을 포위하자 자살한다. 이로써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황조는 제5대 네로 황제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반란군을 이끌고 진격해 온 갈바 장군에 의하여 새로운 플라비우스 황조가 들어섰다. 권력을 장악한 갈바 장군이 새 황조의 첫 번째 황제로 추대되었다.

  

5. 영화를 다시 보려면


      1). 그 동안 Quo Vadis Domine라는 영화가 여러 차례 제작 되었다고 한다. 모든 영화들이 원작 내용을 가지고 제작 하였지만,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그 내용들은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때문에 아래 여러 영화들을 모두 보면 원작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2). "12세 이상 관람 가"라는 싸인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도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나옴으로, 심장이 약한 자, 어린이 그리고 임신부들은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3). 아래 영화들을 보려면 [영화 보기]라는 곳이나 [미디어 주소]에는 Link 처리가 설정되어 있으니 클릭하면 열린다. 또는 미디어 주소를 복사하여 명령문에 부친 다음 Enter를 쳐도 볼 수 있다. 

      4). 아래 3개의 영화는 모두 Quo Vadis 영화이다. 그렇지만 편집 과정에서 절사한 양에 따라 그 길이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가). daum.net에서

      1). 이 영화는 1951년도 제작한 것으로 대화 언어는 영어이고, 한글 자막이 처리되어 있다.

      2). 소요 시간은 도합 2시간 48분 06초이다.

      [영화 보기 1-1]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3 (29분 42초)

      [영화 보기 1-2]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4 (32분 13초)

      [영화 보기 1-3]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5 (24분 42초)

      [영화 보기 1-4]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6 (26분 49초)

      [영화 보기 1-5]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7 (26분 40초)

      [영화 보기 1-6]  http://cafe.daum.net/p4876945/ExIQ/948 (28분 37초)

     

    나). daum.net에서

      1). 이 영화는 1951년1951년도 제작한 것으로 대화 언어는 영어이고 한글과 영어 자막이 처리되어 있다. 

       2). 아래 [영화 보기]를 클릭하여 열면 4개의 프러그인이 보일 것이니 순차로 열어 감상하면 된다.

       3). 소요 시간은 도합 2시간 74분 01초이다.

      [영화 보기  #2]  http://blog.daum.net/jnc9643/859

          #1    (43분 24초) 

          #2    (43분 42초) 

          #3    (53분 42초) 

          #4    (33분 13초)

    

    다). dailymotion.com

      1). 이 영화의 제작년도는 알 수 없다. 대화 언어는 영어 아닌 다른 나라 언어이고 한글 자막이 처리되어 있다.

      2). 영화 내용은 3-1부터 3-3이 한 셋트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있어, 3-4로부터 3-6으로 보충하고 있다.

      3). 소요 시간은 2시간 24분 00초 + 보충 : 01시간 13분 27초, 도합 : 3시간 37분 29초이다.

 

      [영화 보기 3-1] (48분 00초)

          www.dailymotion.com/video/xxa8z1_quovadis-1_webcam

 

      [영화 보기 3-2] (48분 01초)

          www.dailymotion.com/video/xxa8ze_quovadis-2_webcam

 

      [영화 보기 3-3] (48분 01초)

          www.dailymotion.com/video/xxa8zh_quovadis-3_webcam

 

      [영화 보기 3-4] (29분 50초)

          www.dailymotion.com/video/x4jk6rn_quovadis-4-_shortfilms

 

      [영화 보기 3-5] (28분 44초)

          www.dailymotion.com/video/x4mfnx0_quovadis-5_shortfilms

 

      [영화 보기 3-6] (14분 53초)

          www.dailymotion.com/video/x4mfpg3_quovadis-6-last-scene-nero-tictator-in-rome-era_shortfilms

     

6.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난 것 


    가). 사건이 소설이 되어 다시 영화가 되기까지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대화재 사건의 죄를 덮어 씌워 대 박해를 가하게 되자,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가던 중,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써, 발길을 돌려 로마로 다시 들어갔다. 베드로는 로마 옥중에서 많은 기독교도들과 함께 순교를 당하였는데, 그 때는 서기 60년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베드로행전은 서기 180-19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니, 박해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약 110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그러므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미 다 죽고 없으며, 또 사건 내용을 전수 받은 사람들도 생명 보존을 위해 숨어 살고 있으니, 베드로행전의 내용은 자료 수집이 어려웠던 탓에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서기 1896년에 이르러,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센킨비치가 "쿠오바디스"라는 소설을 만들었는데, 사건 발생일로부터 1800 여년이 지난 후였다. 그간 오랜 세원이 흘렀으니, 권력도 변했고, 사상도 변했고, 환경도 변한 가운데서, 관계 있는 자료의 확보가 심히 어려운 가운데서 만들었음에도,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는데 약 5년이 걸린 정도의 방대한 양이라고 하니, 도저히 역사적인 기록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베드로행전에 기록된 내용과 역사가들이 기록한 자료 등을 토대로 작품의 골격을 세운 다음, 자신의 생각 등을 총 동원하여 살을 부쳤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가감 수정 미화 등의 현상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관람객을 동원할 수 있어야 수지 타산이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재미 있는 남녀간의 애정 문제 등을 삽입하야 사람들의 흥미를 돋꿀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는 삭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외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어떤 것은 미화하고, 어떤 것은 과장하고, 정해진 분량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수정 변경 또는 절사도 하였고, 특별한 부분에서는 전문가의 고견을 반영하는 등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원직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그 내용들이 실제와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사소한 내용이 크게 부풀려지기도 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특정인의 구미에만 맞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된다.

    

    나). 두개의 영화 내용이 다르게 표현된 예

       1). 우르수스가 사나운 검은 소와  대결 할 때, 한 영화는 리지아를 말뚝에 묶어 놓았고, 또 다른 영화는 리지아를 결박하여 소 등에 매달았다

       2). 우르수스가 사나운 소와 싸워 이겼을 때, 한 영화는 네로가 리지아 등을 모두 죽이라고 하엿고, 또 다른 영화는 네로가 리지아 등을 모두 살려주라고 결정했다.

       3). 네로가 형을 집행하라고 내리는 신호 방법, 한 영화는 손을 번쩍 들었고, 또 다른 영화는 네로의 신하가 붉은 천을 던지는 신호.

       4). 네로 자살하는 장면에서, 한 영화는 가슴을 단도로 찔렀고, 또 다른 영화는 목을 단도를 찔렀다.

       그 외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은 분명 두 영화 중 하나 또는 두 영화 모두가 사실과 다르게 제작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충분한 자료가 없음으로 상상하여 각색한 결과일 경우도 있고, 또는 관객 동원을 위해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 임의 변개하였을 수도 있다.

  

    다).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각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다. 영화 속에 담겨 있는 남녀 간에 일어나는 애정 문제 등과 같은 흥미로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고, 영화 중에 나오는 기독교인들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다가 끝내 순교를 당하면서 신앙을 지켰다는 점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영원한 내세를 바라보고 소망 안에서 주님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신앙의 용사들이 모두 되시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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