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함께 60년


부제 : 결혼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저희 부부는 1957년 3월 9일 결혼 하였으니 2017년 3월 9일이면 결혼한지 만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나간 60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았더니, 아내는 이 못난 자를 믿고 부모형제와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저에게로 왔는데, 저는 그간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그에게 안겨주면서 많은 고생을 시켰으니, 미안하기 그지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제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아내가 당한 많은 어려움과 고통 등을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용서를 빔과 동시, 또 아내가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음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이 글과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해하시면서 너그럽게 보어 주시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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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부터 결혼 직후 (1957)

1. 1957 1월초순 친구간인 양가어른

   30년전 회포풀며 옛날얘기 나누다가

   화제내용 옮겨가길 자녀들의 혼인문제

   사돈맺는 합의성사 우리약혼 결정됐죠

  

2. 스물두살 농촌처녀 스물네살 군인총각

   서로서로 상대방이 어떠한지 궁금하여

   총각녀석 진해에서 사랑편지 띠웠더니

   약혼사진 찍자면서 만나자는 사랑답신

 

3. 3일휴가 엳은총각 새벽기차 출발하여

   해질무렵 재를넘어 약혼자집 이르렀죠

   해가뜬후 사진찍고 저녁에는 장래꿈을

   돌아가는 오백리길 완행열차 입석자리

 

    보충 설명 : 진해로부터 경북 의성까지는 약 500리 정도의 거리이다. 그러므로 오늘 날과 같이 교통 수단이 발달 하였다면 2시간 정도이면 능히 주파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당시는 진해 역에서 열차에 오르면 창원, 삼랑진, 대구, 영천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어려움이 있었다. 거기에다 완행 열차인 까닭에, 정거장 마다 정차 하기 때문에 연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연착하였을 경우에는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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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리 밖 님을 찾아가서 찍은 사진

 

4. 1957 3월9일 천막치고 멍석깔고

   이웃교회 목사님이 결혼주례 하셨지요

   하나님이 정한자니 백년해로 약속받곤

   하나님과 사람앞서 부부됨이 선포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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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밑에서 거행된 결혼식

 

5. 전쟁직후 경제사정 어려웠던 시절이라

   결혼선물 금반지와 만년필로 간소하게

   식올린후 첫날밤엔 속삭이며 단꿈꾸다

   예배당의 종소리에 눈을뜨니 주일이라

 

6. 흙벽돌집 예배당에 손을잡고 들어가니

   교역자가 없는교회 모인교인 삼십여명

   신랑신부 특창하라 영수님의 말씀따라

   지금찬송 325장 주께감사 영광돌려

 

찬송 325장 : 예수가 함께 계시니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후렴]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2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 이름 전파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3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7. 결혼직후 님을두고 군령따라 전선으로

   서북해상 백령근해 NLL의 해상방위

   천안함이 폭침당한 적전해상 항해할때

   두고온님 보고파서 넋빠진적 있었다오

    

    보충 설명 : NLL은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을 체결할 때 유엔군 사령관인 클라크(Mark Wayne Clark) 장군이 남북 간의 해상 무력 충돌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UN군 함정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선으로 설정한 선으로 이를 가리켜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NLL)이라고 말한다.

 

8. 작전에서 귀항하니 벗꽃피는 좋은시절

   님과함께 신혼여행 진해땅을 찾았지요

   거리마다 벗꽃만발 분홍색깔 물들었고

   전투함정 보여주려 통제부내 함정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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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때 진해 충무공 동상 앞에서

 

9. 52함의 현문지나 님과함께 들어가서

   상관찾아 인사한후 함정구경 시켰지요

   명령따라 죽고사는 군인이니 어이할꼬

   전속발령 났다면서 빨리부임 하란명령

 

    보충 설명 : 1) 현문(舷門)이란 함정의 출입문으로 보초가 서서 출입자를 감시 통제 하는 장소이다. 2) PCEC-52함은 상륙함이고 전속갈 함정인 O-3함은 유조선이다. 

 

10. 전속가는 O-3함 부산항에 있다하니

    늦게떠난 신혼여행 조퇴라니 얄궂어라

    삼랑진역 프렛홈서 나의님은 북행열차

    남행열차 올라탄나 손흔들며 이별했죠

 

11. 부산군항 제1부두 계류중인 함정올라

    부임신고 마친다음 동남아로 향한출항

    태국월남 자유중국 순방하는 원양항해

    6월중순 귀국하니 제대특명 기다리네

 

    보충 설명 : 동남아로 떠나는 원양 항해는 국가 간의 친선 도모와 해군 사관하교를 졸업하는 생도들의 전투 훈련 실습을 위한 항해이다. 필자가 탄 유조선은 전투 함정 2척에서 필요로 하는 유류, 식량, 보급 물자 등을 싣고 가는 함정이다.

 

어려웠던 신혼초기 (1957-1960)

12. 7년동안 나라지킨 귀향하는 머슴에게 

   빈손으로 내보내는 어려웠던 나라경제

   아홉살난 대한민국 전쟁상처 극심하여

   전후복구 한창이니 무슨돈이 있었으랴

 

    보충 설명 : 1957년 필자가 제대할 당시의 계급은 1등병조였으니, 군 공무원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제대 후인 1960년 1월에 공포 시행된 군인연급법에 의하면 군 공무원에 해당하는 계급에 있는 자가 전역할 때는 퇴직금 또는 퇴직일시금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전역할 때는 군인연급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13. 저축한돈 한푼없고 백수신세 되었으니

    님보고파 가려해도 돈없으니 속수무책

    천년같은 하루하루 편지로서 만나다가

    신행일이 정해지니 먹고살일 새론걱정

 

    보충 설명 : 당시 경북 지방에서는 결혼 후 신부는 일정 기간 친정에 머물러 있다가 신랑 집과 합의하여 날자를 정한 후 신랑 집으로 가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것을 가리켜 신행한다고 말한다.

 

14.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하직하고

    오손도손 지내오던 형제들과 작별한님

    친정오빠 이끌리어 신행길에 오른것은

    여인들의 갈길이니 눈물딲고 따랐겠지

 

15. 입동날의 추운겨울 연기뿜는 기차타고

    오후3시 도착한곳 강원도땅 영월이라

    잔치손님 환대속에 신부자리 좌정하니

    군복입고 헤어진자 사복입고 나타났네

 

16. 전쟁직후 어려울때 십여명의 대가족이

    아버님의 월급에다 어머님의 장사수입

    장자형님 육군복무 이내몸은 백수이니

    부모님껜 죄송하고 심적고통 심했지요

 

17. 아내온지 18일후 우체국의 통신사로

    기본근무 초과하는 악조건의 직장일세

    한달월급 받고보니 쌀한가마 못살액수

    박봉에다 호된근무 일할의욕 사라졌네

 

18. 직장옆집 사글세방 살림차린 신혼부부

    사과궤짝 밥상삼고 깡통으로 요강대용

    세상사람 신혼생활 달콤하고 좋다지만

    신혼생활 일기장엔 걱정근심 가득하네

 

    보충 설명 : 요강이란 야간 취침할 때 방에서 소변을 보기 위해 놋쇠나 사기로 만들어 뚜껑을 덮도록 만든 그릇이다.

    

19. 대통령이 깡통들고 외국원조 받아와서

    국민들의 먹거리를 이어주던 수난기니

    나라사정 이해하며 참으면서 일했지만

    혹독하게 일하고도 박봉이니 죽을지경

 

 (1961-1966)

20. 월급타면 봉투채로 님의손에 넘겨주고

    가정생활 걱정않고 공무에만 집중했죠

    4주간의 공직교육 끝마치고 돌아오니

    집에있던 가족들은 양식없어 굶주렸네

 

     보충 설명 : 5 16 군사 정권이 들어선 후, 일반직 전공무원의 의식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교육이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각 시도 공무원 교육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기에, 필자 역시 춘천으로 가서 그 교육을 받았었다.

  

21. 한밤중에 연탄까스 우리안방 쳐들어와

    4명가족 죽이려고 올무덧을 놓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의칼 연탄사신 막으셔서

    우리가족 오늘까지 생명보존 감사드려

 

    보충 설명 : 당시 한국에서는 난방과 취사용 연료로 연탄을 사용하였다. 연탄 까스에 중독된다는 것은, 석탄이 연소될 때, 산소(O2) 공급의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 일산화 탄소(CO)가 생성 된다. 이 까스가 호흡기를 통하여 인체 내부로 들어가면 사람의 몸 속에 있는 산소를 탈취하게 됨으로써 산소부족 현상으로 질식사 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연탄 까스에 중독 되었다고 말한다. 

 

22. 농촌에서 순박하게 곱게자란 새색씨를

    쌀과호박 고구마등 난전시장 장사치로

    생활비의 부족분을 장사시켜 메꿨으니

    젊은날에 무능했던 부끄러운 나의과거

 

23. 눈보리가 몰아치는 강원도의 겨울철에

    내의없이 지나왔던 어려웠던 나의님아

    일언반구 불평없이 모진고통 참았으니

    죄송하고 고마워라 어려웠던 과거지사

 

24. 우체국의 청사화재 책임지는 징계받아

    연고없는 쑥고개로 좌천강등 전근했죠

    하나님이 함께하사 명예회복 길로인도

    전방화천 우체국장 보직주며 도우셨네

 

    보충 설명 : 1) 1964년 2월 3일 낮,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연탄 과열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초기에 진화 하여 큰 피해는 없었다. 주간 화기 단속 책임자는 서무계장으로 지정되어 있어, 필자가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 2) 1964년 3월 견책 처분과 동시 1계급 강등에 송탄우체국으로 전근 되었는데, 그 지역을 쑥고개라고 말한다. 쑥고개의 본말은 숱고개(炭峴)로 현재 오산비행장이 있는 곳이다. 3) 1966년 2월 제104 군사우체국장으로 보임 되었는데, 우체국은 화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제7사단 영내에 있었다. 육군 제7사단으로 왕래하는 모든 우편물을 취급하는 체신부 소속 기관이었고, 그 때 거주한 집은 화천 시내에 있었다.

  

25. 전방지역 미수복지 체신업무 물량적어

    일찍퇴근 냇물에서 어항으로 고기잡고

    집마당엔 채소갈고 꽃동산을 꾸몄더니

    동리사람 지나가며 꽃집이라 불렀지요

 

26. 자고나면 북한삐라 거리마다 뿌려지고

    비상차량 싸이렌과 전쟁소식 귀아팠네

    산수좋은 휴양지의 별장생활 같았지만

    심적불안 너무커서 서울가길 서둘렀네

 

(1967-1972)

27. 하왕십리 산꼭대기 난민촌에 정착하니

    비탈진곳 가정집에 개척중인 교회있네

    열명남짓 교인이나 펄펄끓는 뜨거움에

    작은힘을 주를위해 받치기로 작정했죠

 

    보충 설명 : 당시 그 교회는 왕십리 난민촌에 제주 출신 조승근 목사님이 개척하던 금북 교회로 지금은 그 이름을 성체교회라고 개명 하였고 지금도 그 지역에 있다.

  

28. 처녀시절 대구고등 성경학교 공부한후

    영수님을 도우면서 친정교회 섬겼던님

    결혼하고 떠남으로 일못함이 맘에걸려

    할일많은 금북교회 힘을다해 섬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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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고등성경학교에서 신앙을 키운 님

 

    보충 설명 : 1) 대구 고등성경학교는 1913년 안의와(James Edward Adams) 선교사에 의하여 설립되어 농촌교회를 위한 많은 목회자를 양성 배출한 학교이다. 전쟁 발발 후 얼마 안되었을 때인 1953년 대구 삼덕교회 담임이신 홍대위 목사님이 교장, 이상근 목사님이 교감으로 계실 때, 아내는 대구 고등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전쟁 후 어려운 가정 사정 때문에 마치지 못하고 중퇴 귀향했다. 2) 당시 대구 고등성경학교에는 아내의 외종조부(외조부님의 동생)인 이태학 목사님이 강도학(설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계셨는데, 그 어른이 전도 사역자가 될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 관계로 아내의 3 자매들이 줄줄이 그 학교를 택하게 되었다. 3) 대구 고등 성경학교는 현재 경산시에 있는 영남 신학교의 전신이다. 4) 아내의 친정지역 교회는 오상교회로 현재는 의성동부교회로 개명하였다.

  

29. 추수할것 많지마는 거둘자가 없는교회

    낮시간엔 목사님과 전도하고 환자심방

    밤시간엔 전교인과 합심하여 기도하니

    하나님껜 사랑받고 믿음성장 감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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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난민촌에서 개척중인 교회를 섬길 때

     

30. 이웃사는 교인가정 연탄까스 중독으로

    4명가족 전원사망 교회적인 어려운일

    애기업은 나의님이 목사님을 보좌하여

    사체수습 하였음을 어느누가 믿을소냐

  

(1973-1982)

31. 공무원의 아내이자 네아이를 가진엄마

    한영목장 영업감찰 세무서서 발급받고

    집에서는 쇠똥치고 우유짜는 목부일을

    밖에가선 소장사로 팔방미인 강인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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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유기로 젖소에서 우유 짜는 모습

    

32. 폭우쏟는 해질무렵 구치소앞 수렁속에

    빠진소를 구하려고 소배밑에 밧줄걸고

    공무원의 퇴근차를 여인네가 가로막고

    구해달라 호소하여 빠진소를 끌어냈죠

 

    보충 설명 :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구치소 인근에서 한영목장을 경영할 때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매입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구치소에서 상수도를 설치하기 위해 파이프를 매설한 곳이 빗물로 인하여 수렁이 된 곳에 소가 빠졌다. 그러자 아내는 소가 빠진 수렁으로 들어가서 소 배 아래로 밧줄을 넣은 다음, 인력으로 소를 끌어낼 준비를 마쳤으나 댕겨줄 사람이 없었다. 마침 구치소 정문에서 퇴근차가 나오는 것을 보고, 흙투성이가 된 여인네가 통근차를 가로 막고 서서, 울면서 "우리소 구해주세요"라고 호소하여, 결국 그 분들이 비를 맞으면서 밧줄을 당겨 수렁에 빠진 소를 건져 내었다. 

 

33. 신용쌓은 목장주라 가진돈이 부족할땐

    대한사료 찾아가서 즉석자금 동원했죠

    폐업하는 목장소를 몽땅사서 몰고와서

    며칠후에 되팔면서 수익올린 사업가라

 

34. 소의질병 발생하면 혈관주사 꼽아주고

    고창증에 걸린소는 배를뚫어 까스빼내

    산과들서 쇠꼴베어 소의배를 불려주니

    우유생산 날로증가 흑자나는 사업경영

 

35. 하나님이 은혜주사 야곱목장 같은축복

    한마리로 시작한게 20여두 되었지요

    말씀따라 생활하며 감사하며 살았더니

    주님께서 은혜내려 영육간의 형통이라

 

36. 고용했던 옛날목부 복면하고 한밤중에

    님의목에 칼을대곤 돈내놔라 위협하네

    하나님이 방패되사 강도칼날 물리치고

    생명재산 피해없이 보호하심 주께감사

 

37. 목장사업 성공하여 빈곤에서 탈출하자

    뜻하였던 전도사업 실행할맘 간절하여

    늦은나이 총회신학 여교연과 입학하여

    악조건을 물리치고 선지학교 마쳤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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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총신 졸업 모습

   

38. 천호동의 중흥교회 방배동의 성덕교회

    주님에게 쓰임받는 여전도사 봉직했죠

    문제있는 교인가정 심방하고 기도하니

    눈물흘려 뿌린씨가 싹이터서 열매됐네

 

39. 친정지역 불신자들 구원할맘 간절하여

    바쁜시간 할애하여 오상지역 찾아갔죠

    겨울눈을 헤치면서 복음의씨 뿌렸더니

    뿌린씨가 열매되어 장로장립 할렐루야

  

(1983 이후)

40. 남편따라 교회사역 성심성의 도우면서

    교인들을 환대하고 유고교인 찾아갔죠

    어린아이 돌보면서 음식공궤 힘쏟으니

    하나님이 은혜주사 기쁨있는 삶이었죠

 

41. 걸린암서 벗어나려 투병하는 나를위해

    밤새도록 기도하며 간호하던 나의님아

    하나님의 은혜주사 질병벗고 살았으니

    못난이몸 님을위해 기도하며 살겠노라

  

42. 싼타아나 양로원의 외로우신 어르신들

    침실마다 찾아가서 위로하며 돌봤던님

    2년여를 찬송기도 성경말씀 들려주어

    석양햇살 받는노인 영생길로 인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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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에서 노인들을 찾아 봉사하는 님

  

43. 한국농촌 전도위한 필요자금 마련코자

    새벽부터 저녁까지 김치담궈 팔았지요

    티끗모아 모인돈이 구령사업 동력되어

    4차례의 한국전도 무난하게 이뤘지요

 

육신이 후패하는 님을 보고

44. 흑발이던 님의모자 흰모자로 갈아씀을

    잠언16 삼십일절 지혜자는 말씀하길

    영화로운 면류관은 공의길서 얻는다니

    주님주신 면류관을 나의님은 받았도다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45. 꼿꼿하던 님의체형 기역자로 변하였네

    무거운짐 지운탓에 망가짐이 분명한데

    영문글자 아이보다 한글기역 좋다면서

    가정위해 한평생을 수고하심 감사하오

 

46. 팽팽했던 얼굴피부 쭈글쭈글 왠말인가

    고생탓에 곱던얼굴 변한것이 분명한데

    세월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라 대답하니

    천사같은 고운대답 주님말씀 따른거지

 

47. 튼튼하던 치아들이 인공틀이 바뀐것은

    가난으로 영양보충 못해준게 한이로다

    불평없이 묵묵하게 가정돌본 표적이니

    애처럽다 그대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꼬

 

48. 아름답던 얼굴색이 혈색없는 모습으로

    가난고생 겪은탓에 나타남이 분명하다

    미국땅에 살고파서 백인닮아 간다면서

    불평없이 만족하니 고마워라 나의님아

 

49. 펄펄날던 나의님이 보행기로 걷게될줄

    난들어찌 알았으랴 어느누굴 원망하랴

    장애자용 주차장에 차세울때 들리는말

    가까워서 좋다는말 불평없는 자족이라

 

님께 대한 바램

50. 가난뱅이 내게와서 고생겪은 나의님아

    지난날의 나의무능 부끄럽기 그지없소

    어찌하면 보상할까 방법찾아 보았지만

    갚을길이 없다보니 죄송하고 미안하오

 

51. 이세상에 사는동안 서로서로 도우면서

    천성가는 험한길을 힘을모아 헤쳐가세

    소망하던 천국에서 우리주님 모시고서

    그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찬양 꼭이루세

 

52. 결혼직후 신혼부부 오상교회 예배특송

    예수함께 계시니까 시험와도 겁없어요

    기쁨근원 주섬기며 예수안에 살자했던

    그찬송가 가사대로 주뜻맞게 살아가세

  

찬송 325장 : 예수가 함께 계시니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후렴]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2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 이름 전파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3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53. 이세상은 잠간이고 내세천국 영원하니

    남은세상 험난해도 믿음으로 극복하세

    60년을 견딤같이 석양길의 어려움도

    소망중에 참으면서 천국길로 전진하세

 

결의와 소망

54. 님과함께 지난세월 험하고도 어렵던길

    낙심될땐 소망주고 위태할땐 방패되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우리주님

    남은길도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리라

 

55. 저녁노을 석양길을 함께가는 우리님아

    푯대되신 우리주님 바라보고 달려가세

    지금까지 지내온길 주님인도 하심같이

    남아있는 인생길도 주님인도 하시리라

 

56. 크신은혜 내려주사 죽은우리 살아났고

    남은길은 평탄하고 종착지는 천국이라

    측량못할 주의은혜 무한감사 할렐루야

    부름받아 갈때까지 찬송하며 살리로다


 

    결언 : 필자가 60년 동안 님과 함께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주님을 심중에 모시고 살 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수 남진(71)씨는 1972년 "님과 함께"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바 있었다. 그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노래 가사 가운데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이라는 문구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님과 함께 하는 것을 제일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유도 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님과 함께 있을 때, 행복 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님과 함께 있는 사람 모두가 행복할까? 분명 그것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거쳐간 유명한 사람 가운데, 님과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이름 있는 자 몇을 찾아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아내 쿠산티페로 인함이고,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제 때문에, 그리고 톨스토이는 아내 소피아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C. F. Butler가 작사한 찬송가 438장 가사 3절을 보면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후렴에서는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에서 구원함을 받고 보니, 잠시 이 세상에서 살면서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전혀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신의 환경이 천국으로 화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그 이유는 앞으로 있을 영원한 내세에서 행복 속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심중에 모시고 있으면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와 같은 것을 실제 체험한 자를 예로 든다면, 주님 없는 김익두는 깡패였으나 주님 모신 김익두는 목사님이 되었고, 주님 없을 때의 어거스틴은 방탕아였지만 주님 모신 어거스틴은 위대한 기독교의 신학자가 되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가이샤라에 있던 이타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뇨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모신 까닭에 그의 가정 모두가 하나님께 사랑 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성경과 함께 길이길이 빛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 역시 그와 같은 것을 직접 체함한 바 있다. 필자가 영월우체국 통신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는 너무나 많은 일에 지친 까닭에, 한 때 필자의 믿음이 수면 상태까지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럴 때 믿음 좋은 아내는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하였기 때문에, 잠 자던 필자의 신앙이 깨어나게 되었고, 연탄 까스의 중독으로 사망 직전에 이르렀던 온 가족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었으며, 강도의 칼날 앞에서도 생명과 재산을 보존할 수 있었고, 또 경제적인 밑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은혜 받은 일들이 많지만 생략하고자 한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예수 안에서 굳게 서라"는 벽보에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썼더니, 뒤 따라 나온 아내 역시 그 뜻에 동의하고서는 거기에 서명하는 것을 저는 보았었다.

 

    그러므로 님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의 비결은 부부 모두가 신앙의 반석 위에 서 있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임으로, 아무쪼록 우리 모두 주님을 잘 섬기면서 "예수 안에 굳게 서서" 행복한 가정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하면서 끝을 맺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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